내맘 읽기~

아버지 기일에 즈음하여..

엄마의딸 2017. 12. 8. 08:30



지난 11월 어느 날

울 엄니랑 난 집 근처 마트엘 갔습니다.

엄니 겨울 채비도 할 겸, 이것저것 장 볼 게 있어서 갔었지요.

둘 다 저질 체질이라 카트 반 개 분량을 장보고 나니 힘이 빠졌습니다.

 

담을 거 담았으니 그만 가자~~

보채시는 엄니 말씀에 네, 그러지요~~ 하며 계산대로 향하는데,

거기에 쥬얼리 가게 하나가 있었습니다.

 

엄니 :

이게 다 모야~~

진짜 금이야...???

 

:

그럼요~~

여기 다 이쁘고, 진짜라 비싸요...

 

엄니 :

비싸...??

 

후다다닥~~~

울 엄니, 비싸다는 말에 카트를 밀고 저쪽으로 도망가십니다.

난 엄니를 불러대며 말씀드렸어요.

 

엄니~~

이거 껴 본다고 돈 받지 않아요~

와서 좀 껴 보셔~~

 

가게 언니 :

어머니~~ 한 번 껴 보세요~~

안 사셔도 괜찮아요~~

 

딸과 가게 언니가 계속 말씀을 드리니 밍기적 거리시던 엄니께서

그런가...???

하시곤 슬금슬금 곁으로 오셨습니다.

그러시고는, 이게 얼마씩이나 하는 거니...?

 

, 얼마 안해요.

비싸봤자 울 엄니보다 비싸겠어요...??

한 번 맘에 드는 것 있음 껴 보셔~~

 

아냐,

내 맘에 드는 게 없는 것 같어~~

그냥 가자.

 

난 가게 언니에게 이것저것을 물어보며 껴 보시길 강권했고,

엄닌 싫다며 계속 손 사레를 치셨지요

 

그러시다가 끝에 하시는 말씀,

난 그런 것 보다 요런 게 더 좋아 보이네~~

하시며 가리킨 것은, 그야말로 2~30대 젊은이들이 착용함직한 커플링이었습니다.

 

,

그랬습니다.

울 엄니는 제대로 된 반지가 하나도 없으십니다.

경제력 없으셨던 아버지에게 받은 것은 당연히 없었고

시골에 사셨던, 땅 한마지기 없던 엄니는 남의 집 일 무수히 해 가며 곗돈을 부어

겨우 마련하셨던 금반지와 금목걸이는 돈도 없으면서 술, 담배를 입에 달고 사셨던

아버지 병원비로 몽땅 날리셨고, 나중에 맏며느리가 해 드린 반지는 허술한 현관문을

따고 들어간 도둑님 손에 들어갔습니다.

 

그 후, 나름 경제력이 생긴 딸은 무슨 때 마다 목걸이, 반지를 들먹였었는데,

목걸이는 무거워서, 반지는 걸리적 거려서 싫다 하셨고, 바보 같은 딸은 엄니말씀을

곧이곧대로 믿고 맛있는 음식이나 옷가지를 선물로 해 드렸네요.

 

그러나 엄니 속마음은 그게 아니었던 것입니다.

젊은 시절 못 껴 봤던 블링블링한 반지가 소원이셨던 거겠지요.

아무리 봐도 낼 모레면 팔순이신 엄니 손에 어울릴 게 아닌데

엄닌 그게 꼭 맘에 드신다며 손가락에 끼우시곤 요리조리 보시며 좋아라~~ 하십니다.

14K에 큐빅이 촘촘히 박힌, 가늘고 하얀 손에 이쁘게 어울릴 반지를 말이지요.

 

엄니, 그게 맘에 드셔...??

마침 좀 있으면 엄니 결혼 56주년인데, 제가 미리 선물로 사드릴 테니까 끼고 가셔~

 

증말???

비쌀 텐데....하는 말 꼬리가 끝나기도 전에 반지를 끼신 엄니는 이미 카트를 밀고

저만큼 가고 계십니다.

아까의 저질체력은 이미 반지의 제왕으로 변신하셨습니다.

 

그날 이후,

엄니의 손에서 그 반지는 계속 수줍게 반짝이고 있으며,

드디어 엊그제, 123일이 엄니의 결혼기념일이었습니다.

집 근처 식당에서 둘이 외식을 하며,

엄니, 그 반지 아버지께서 사 주셨으면 더 좋으셨을 테지만

안 계시니 아버지대신 제가 사 드린 거예욧~~!!

하고 말씀 드리니,

 

뭣이라고...???

아이고, 니 아부지...???

니 아부지가 샀으면 난 안껴...!!!

 

아니, 왜요...???

 

왜는 무슨,

어쩌고...저쩌고,,,,,

 

.

저는 그저 웃기만 했지요.

엄니에게 제 아버지는....당신을 고생시킨 남자로, 공부 잘하는 자식 대학공부도 못 시킨

무능한 아비로만 기억이 되시는 모양입니다.

지금 이렇게 엄니 앞에 앉아

맛있는 저녁도 사 드리고, 끼고 싶었던 반지도 턱턱 사 드리는 능력 좋은 딸에게

그럴 수 있는 유전자를 제공한 중요한 인물이시라는 것은 잊으신 모양입니다.

 

엄니,

엄니 딸 이리 똑똑한 거....아버지 영향도 있어요.. ^^

 

그런가..??

하하하..

호호호...

 

이제 곧 있으면 울 아버지 기일입니다.

벌써 3.

 

아버지

거기서 잘 계시는 거 맞지요...??

심심하셔서 잔소리꾼 엄니 부르시고 싶으시겠지만, 참아주세요

88세까지 팔팔하게 제 곁에 계셔 주신다고 약속하셨거든요.

그러니 아쉬운 대로 먼저 그곳으로 가신 큰외삼촌과 예전처럼 논 웅덩이에서

미꾸리라도 잡으시며 무료한 시간 달래시길 바래요.

 

사랑했고, 보고 싶습니다...!!


'내맘 읽기~' 카테고리의 다른 글

아버지께 다녀오다  (0) 2018.08.27
힘들지만...  (0) 2018.04.23
차라리....  (0) 2017.10.20
내게 쉰살은...  (0) 2017.08.24
혼자만의 시간  (0) 2017.05.31